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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 조계종 금선사 "영옥방식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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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본향 작성일09-12-16 16:43 조회2,4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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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선사는 청와대와 경복궁이 위치한 인왕산이 바로 보이는 종로구 구기동에 소재하고 있으며, 자하문터널을 지나서 구기터널 입구에서 이북5도청을 지나서 북한산 국립공원 비봉 “시인의 마을”을 지나서 비봉코스를 따라 올라가다보면 세속의 세계를 벗어나 불법의 세계로 들어서는 첫 번째 관문인 삼각산 금선사의 일주문을 만나게 된다.

도량의 전각은 법회를 보는 반야전을 지나서 200년이 넘은 소나무가 중앙에 자리를 하고 있으며, 소나무를 지나서 108계단을 오르면 금선사의 주불이 모셔진 대적광전이 사찰의 가장 중심부이면서 가장 높은 곳에 그 위용을 과시하고, 우측으로는 삼성각(殿閣)이 있고, 북한산의 일급수가 모였다가 흘러내리는 홍예교가 자리를 하고 있다.

대적광전 아래에 있는 미타전과 연화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콘크리트 2층 건물로, 2004년 법안스님이 신축했다. 1층은 연화당이라는 편액이 붙은 건물로, 영가들의 영옥(靈玉)과 위패를 봉안하는 추모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금선사 신도를 중심으로 한 소량 (약 600기)의 영옥 추모관이며 냉난방을 겸비한 최신형 공간으로 아미타원불과 지장보살원불이 내부를 장엄하고 있으며 아늑한 공간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2층은 재사의식과 각종 강의를 위한 미타전이다.

홍예교에서 바라보면 맞은편에 앉아있는 적묵당은 5칸 전통목조 건물로 원형초석을 두고 그 위로 두리기둥을 세워 익공을 받친 모습으로, 여느 사찰의 요사채처럼 중앙 3칸은 툇마루가 있는 다담방을, 좌우 협칸은 요사채로  구성 되어 있고 아래에는 대중공양간인 심검당이 위치한다.

반야전의 아래엔 농산스님이 300일 기도후 순조대왕으로 환생한 기도성지인 목정굴이 위치하고 이 목정굴 수월관세음 보살님이 바라보시는 정면에는 인왕산이 위치한다.
금선사의 신행단체로는 총신도회를 중심으로 화엄회, 백화회, 지장회, 관음회, 보원회, 문수회, 거사림회, 자원 봉사단이 법회와 더불어 봉사활동, 수련회, 특활활동 등 각 단체별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북한산 국립공원내의 아름다운 자연환경 소나무숲과 솔내음이 가득찬 산소 같은 사찰 금선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불교문화사업단의 템플스테이 지정사찰로서 현대를 살아가는 서울 시민들에게 마음의 평안과 일상에 찌든 때를 말끔히 씻어주는 청량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 템플스테이를 매월 2회 정기적으로 시행하여 오늘도 부처님의 자비를 세상에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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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건이래로 많은 선지식들이 주석하셨으며, 조선중후기 정조대왕의 원찰로서 수행자와 기도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찰이었으나, 일제의 강점기에 소실되었던 것을 불기 2529년(서기 1955년) 도공(道空)스님께서 중건하시고, 지금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은 현 주지 법안(法眼)스님이 목정굴을 복원이래 적묵당, 미타전, 연화당, 삼성각, 대적광전, 반야전, 홍예교, 일주문, 해우소 등을 중창하였다.

부처님께서 상주하시는 기도처인 이곳에서 수행시던 농산(聾山)스님이 조선 정조대왕의 왕세자인 순조대왕으로 환생하신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등 정조대왕의 원찰인 기도도량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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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구기동196-2번지. 삼각산 금선사(金仙寺)에는 이곳에서 수행했던 스님의 도력(道力)으로 조선왕조의 대를 잇게 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숭상하던 시대라 불법을  폄훼하려는 움직임이 노골적으로 일어나고 있던 시대였던 만큼 운신의  폭이 좁았던 스님들을 옭죄는 이야기와 스님의 도력이 드라마틱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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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22대 임금이었던 정조(正祖)왕 때다.  암행어사 박문수(朴文秀)가 민정을 살피기 위해 경향 각지를 유랑하다가 사불산(四佛山) 대승사(大乘寺)를 들렀는데 젊은 스님들이 전각 위에 걸터 앉아 재미나게 장기를 두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장 받아라.” 한 스님이 소리쳤다.
옆에 있던 스님이
“장은 무슨 장을 받으라는 게요?”
“스님, 상(象)장입니다.”

다시 옆에 있던 스님이 말(馬)로 상을 치면서 차(車)의 길을 트면서 큰 소리로
“멍군을 받으시오”
라고 소리를 질렀다.
암행길에 오른 박문수는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아니 스님들이 절에서 염불이나 참선같은 수행을 해야지
이 무슨 신선놀음인가.  또 깨침을 얻은 스님들이라면

세간에 나가 널리 부처님 가르침을 펼쳐야지 절에 틀어박혀

장기놀이를 하다니….”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한 박문수는 한양으로 돌아와 이 사실을 임금
에게 고했다.

“전국을 돌아보니 중들이 사찰에서 장기나 두고 무위도식(無爲徒食)하고 장기나 두고 있으니 무엇인가 일을 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가뜩이나 불교를 배척해 왔던 조정은 전국의 사찰에 명하여 스님들이 닥종이로 한지를 만들어 진상하도록 했다.  닥종이가 없는 금강산과
같은 산승들에게는 석청에 잣을 넣어 만든 ‘잣박산’을 진상하도록 명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지방 토호세력들도 스님들에게 족보를 만들 종이를 바치라느니 잔치음식을 만들어 오라느니 하면서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니 진정으로 수행하려 하는 스님들도 정진을 할 수 없게 되고 급기야는 절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러한 세태를 보고 파계사에서 수행하고 있던 용파스님은 크게
걱정하며 시정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관청에서 가서 호소를 해 보기도 하고, 상소문을 써서 올려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이거 도저히 안되겠구나.  다른 방도를 써야겠다.”

용파스님은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 이 일을 해결해야겠다고 작심하고 남해 거제도로 들어가 100일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스님은 아예
들어갈 때 배 삯만 가져가고 나올 때는 물 위로 걸어 나올 각오로 기도에 들어갔다.  식량도 딱 100일치만 가지고 섬으로 들어갔다.

“내 이곳에서 신통력을 얻기까지 한발짝도 물러나지 않으리라.”

그러나 정진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식량도 다 떨어졌고,
며칠동안 굶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꿈속에 노인이 나타나 호통을 쳤다.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무슨 수행을 그리도 열심히 하시는가.
이제 식량이 없으니 큰일이구만. 며칠 뒤에 내가 식량을 해결해 줄 터이니 우선 저 아래에 있는 돌꽃(石花)으로 끼니를 연명하시오.”


꿈에서 깬 용파스님은 노인 말대로 바닷가로 내려가 보니 석화가 있었다.  3일을 이것으로 연명하니 무서운 태풍이 몰아치더니 육지
에서 배가 한척이 밀려왔다.  그 안에는 쌀 두가마니와 소금 한 말이 들어 있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로구나.
분명 이것은 부처님이 보내신 게 틀림없을 것이야.”


마음을 다잡은 용파스님은 무섭게 수행에 몰두해 신통력을 얻어
바다위를 걸어서 육지로 나왔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용이 파도를 타고 오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용파(龍波)스님이라고 불렀다.
육지로 나온 스님은 축지법을 써서 한달음으로 한양에 당도했다.
스님이었지만 산발 한 상태로 임금을 만날 날을 기다리며 물지게를
지고 물을 팔았다.  그러나 임금을 만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신통력을 써야겠다.”


스님은 한강물을 청룡(靑龍)과 황룡(黃龍이 엉키어 올라가는 서기방광(瑞氣放光)의 신비한 모습을 만들었다.  때마침 대궐을 거닐던
정조 임금이 이 광경을 보고 그 연원을 알아보게 했다.  신하들은 급히 상서로운 기운이 나오는 집을 추적해 보니 다 늙은 노인이 누더기 한 장을 덥고 드러 누워 있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인데 여기에 있는 거요?”
“시골에서 온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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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파스님은 자신이 이곳에 온 사연과 임금을 만나서 하려는 말에 대해 소상하게 설명했다.

“참으로 기한 인연이오.  나는 임금님을 모시는 별감이오.
내 마침 전하의 명을 받들기 위해 이곳에 왔으니 어서 가서 전하를 뵈알하시지요.”


궁궐로 들어간 스님은 임금에게 눈물로 호소를 했다.


“사람들 가운데는 게으른 사람도 있고 부지런한 사람도 있는데,
어찌 전하께서는 일부 스님들의 게으른 모습만 보시고 전체인양
처분을 내리시니 조선 팔도의 수행자들이 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이 처분을 거두어 주소서.”


정조임금은 보통 스님이 아님을 단박에 알고 조건을 걸었다.

“좋소. 그렇다면 그대도 나의 부탁을 들어주시오.
아직 후사가 없어 걱정이니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오.”


용파스님은 정조임금의 청을 받아들이고 잠시 천안통(天眼通)을 열어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인물을 물색했다.


"예, 전하. 그렇게 해 올리겠습니다. 다만 소승이 만나 함께 기도해야 할 스님이 있으니 그렇게 하도록 윤허해 주십시오.”

정조임금의 허락을 받은 용파스님은 금선사(金仙寺)로 발길을 그 곳
에서 주석하고 있던 농산(聾山)스님을 만났다.

“제가 조선에서 스님들에게 박해를 가하는 폐단을 없애기 위해 임금과 약조를 했는데, 소승이 임금의 후사를 이어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선정에 들어 살펴보니 이 일을 해 주실 분이 농산스님 밖에 없어 보여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소승은 아직 이 생에 할 일이 많아 지체해야 되겠기에….”

이렇게 해서 용파스님은 수락산(水落山) 내원암(內院庵)에서, 
농산스님은 금선사 목정굴(木精窟)에서 300일 관음기도에 들어갔다. 기도가 회향되어 갈 무렵 정조의 후궁인 수빈 박씨는 태몽을 꾸었다.

“소승은 농산(聾山)이라는 사람인데 삼각산 금선사에서 관음정진 중입니다.  용파스님의 청으로 이제 제가 수빈마마의 몸 속에 들어가 이 나라 대를 이을 것이니 그리 알아 주십시오.”

다음날 왕실에는 발신을 알 수 없는 봉서(封書) 하나가 올라 왔는데
“경술(庚戌) 6월 18일 세자탄강(世子誕降)” 이라 적고 있었다. 수빈 박씨는 급히 금선사에 사람을 보내 자초지정을 알아보니 목정굴에서 정진하던 농산스님이 앉은 채로 열반에 들었고, 굴 안에는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했다고 전해왔다.
과연 경술년 6월 18일이 되니 서북쪽으로부터 맑고 붉은 서기가
왕실에 닿아 산실을 휘감고 있었다.  사람을 놓아 그 진원을 추적하게 하니 그 곳은 다름 아닌 바로 이곳 목정굴이었다.  그 상서로운 기운은 왕실로 이어져 수빈 박씨의 산실(産室)과 연결되어 있었다.  농산스님 입적과 순조로의 환생을 목도한 정조는 조선에서 스님을 피박하던 폐습을 없애고 내수사(內需司)에 명(命)하여 목정굴 위에 절을 크게 중창하게 하였으니 곧 금선사(金仙寺)이다.

또 다른 이야기에는 농산스님이 금강산 만회암에서 평생 천수주력
으로 도력을 얻었으며 전라남도 완도에 있는 고금도에서 석화를 양식으로 1000일 기도를 한 뒤 도를 통했다고 적고 있다.  현재 금선사는 일제시대의 강점으로 폐사되었으나 광복 후에는 도공스님이 중건을 했고, 현 주지 법안스님이 1996년 3월에 복원해 수월관음보살을 봉안하고 전통사찰로 등록했다.  금선사는 요즘도 지금도 음력 6월18일에 순조의 탄신제(誕辰祭)를 올리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사찰사료집 금선암 내원암>, <불교영험설화>,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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